
35세쯤 되면 당신은 쓰지도 않는 케이블이 잔뜩 든 커다란 박스 하나쯤은 가지게 될테지만
그 중 하나가 언젠가 꼭 쓰일 것만 같은 생각에 절대로 버리지 못한다.

오늘!
나는 이 박스 안의 케이블을 썼다!
우리 동네의 공용 창고에 오래된 박스 하나가 요즘 화제다. 그 안에 케이블이 잔뜩 들어 있다며 다들 궁금해하고 있다. 버리기엔 애매하고,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칸칸 남아 있는 이 박스가 어째 요즘 표정까지 바꾼다. 오늘도 이 박스 이야기가 모여 있던 작은 모임을 가볍게 흔들었다.
누가 이 박스를 두고 가는지, 왜 이렇게 오래 남겨뒀는지에 대한 추측이 번져 간다. 정리하는 걸 잘하는 사람이거나, 반대로 뭔가를 기다리는 사람이라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케이블이 실용적이긴 하지만 한두 개를 꺼냈다 다시 쌓아 두는 걸 보면 뭔가 애착이 남은 물건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사이에 소문은 더 커지고, 누군가의 작은 취향과 생활 습관이 쟁점이 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을 보는 우리도 모르게 모습이 달라진다. 하루하루 누가 보는 눈에 따라 박스의 존재감이 커지기도, 작아지기도 한다. 케이블 하나를 보며 옆집의 추억이 떠오르는 사람도 있고,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결국 남은 건 작은 의문과 친구들끼리의 가벼운 속마음일 뿐인데, 이게 왜 이렇게 오래 남아 있는지 종종 생각하게 된다. 박스와 케이블이 우리 일상에 남긴 여운은 뭔가 정리의 속도와 마음의 부담 사이를 오가는 느낌이다. 아마도 앞으로도 이 박스의 자리와 케이블의 흐름은 완전히 끝나지 않을 거 같고, 우리 사이의 작은 규칙들이 또다시 바뀔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 얘기가 이렇게 남아 있는 한, 박스와 케이블이라는 단어는 우리 동네의 오늘을 소소하게 붙잡고 있을 것이다.